2024년 8월 13일,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 청년이 폭염 속에 쓰러져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낮 기온은 34도까지 치솟았고, 실내에서는 선풍기 두 대만이 돌아가고 있었다. 오후 4시 40분경, 작업 중이던 설치기사가 급식실 밖으로 뛰쳐나가 구토를 반복하다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팀장과 동료들은 그를 방치한 채 작업을 계속했고, 결국 청년은 사망에 이르렀다.
숨진 청년은 27세의 양준혁씨로, 사망 전날 한 업소용 에어컨 설치 업체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이틀 만에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업체 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하청업체와 원청인 삼성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양씨의 죽음은 왜 방치되었을까? 에어컨 설치기사의 파편화된 노동 환경이 그 배경에 있다.
에어컨 설치는 가전제품 판매에 필수적인 서비스지만, 설치기사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는 가전 제조사들이 설치 작업을 자회사와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구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가정용 에어컨 설치를 자회사인 삼성로지텍에 위탁하고, 로지텍은 이를 다시 설치기사들에게 재하청하는 형태로 일을 맡긴다. 업소용 에어컨의 경우, 설치는 수백 개의 지역 하청업체에 맡겨지며, 이들 하청업체는 종종 재하청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설치기사들은 영세한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일하게 된다.
양씨가 일했던 유진테크시스템도 대표를 포함해 직원이 5명에 불과한 영세업체였다. 그는 입사 첫날 12시간 동안 일했고, 이튿날에는 고온 속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회사는 온열질환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에어컨 설치기사들은 온열질환에 대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위험한 작업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대조적으로, 가전 제조사에 직고용된 수리기사들은 온열질환 예방 수칙을 문자로 안내받는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근로 환경에서 일한다. 그러나 설치기사들은 여전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어, 산재 위험에 대한 알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재하청 구조에서 더욱 심화되며, 하청업체들 간의 저가 경쟁과 빠른 작업 속도 요구가 안전 조치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양씨의 가족이 하청업체와 원청 삼성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이유는, 그를 방치한 하청업체의 잘못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초래한 삼성전자의 책임도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이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안전 관리 역량과 산재 예방 능력을 평가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결과, 에어컨 설치 현장에서는 안전이 무시되고 있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가전 제조사에 대한 하도급 금지가 어렵다면, 업계 공동의 안전 규정을 마련해 안전 조치가 미비한 현장에서의 작업을 중지시키는 등의 최소한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기업이 안전을 간과하고 쉽게 매출을 올리지 못하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행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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