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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죽음을 선택한 한국인들, 스위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

by 디피리 2024. 9. 23.

2020년 가을, 79세의 조모 씨는 유방암이 뼈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몸 곳곳을 휘감았고, 조 씨는 마치 칼로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이 빠졌고, 가려움과 피부 벗겨짐이 더해지며 고통은 배가됐다. 암이 위장과 폐, 피부로 퍼지면서 통증은 한층 더 심해졌고, 조 씨는 더 이상 병원에서의 치료가 삶의 질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죽음만이 나의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조 씨의 딸 남유하 씨는 어머니가 자신이 의식 없이 중환자실이나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어느 날, 조 씨는 딸에게 스위스에서 외국인도 받을 수 있는 조력 존엄사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어머니의 결정 앞에서 무력했고, 그녀의 결정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 씨의 결심은 큰언니의 요양병원 사망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의식 없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언니의 모습은 조 씨가 원하지 않는 마지막이었다. 과학과 기술이 삶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삶의 연장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조 씨는 자신의 의지대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에서 조력 존엄사를 받기 위한 절차는 만만치 않았다. 병력과 관련된 서류 작성은 복잡했고, 영어 기록에서 "우울하다(depressed)"는 표현 때문에 과정은 한 차례 더 지연됐다. 조 씨와 그녀의 딸은 그 과정에서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견뎌야 했지만, 결국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조 씨는 스위스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소원을 남겼다. 그녀는 다른 중증 환자들이 더 이상 낯선 나라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한국에서도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길 바랐다. 말기 환자에게 스위스까지 13시간의 비행은 또 하나의 고통일 뿐이었다. 그녀는 딸에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고생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수차례 말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도 있다. 2022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박모 씨는 최근 복막암 진단을 받았다. 복막암은 초기 증상이 없어 진단이 늦어지고, 박 씨도 이미 암이 크게 퍼진 상황이었다. 박 씨의 어머니 또한 10년간 난소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어, 그는 스위스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병원의 약은 효과가 떨어졌다. 박 씨는 “조력 존엄사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할 제도다. 사람으로서 마지막 순간만큼은 고통 없이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조력 존엄사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로, 그동안 한국인들의 선택이 증가해왔다. 2023년까지 7명의 한국인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으며, 한국인 회원 수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디그니타스는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